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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학다식

한일관계 중, 흑룡회(黑龍會)의 출현

by KaNonx카논 2017. 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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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관계 중, 흑룡회(黑龍會)의 출현

 

2017/06/09 - 한일관계 중, 춘생문春生門 사건과 아관파천俄館播遷 까지

 

 

전 시간에, 흑룡회의 결성 배경인

 

춘생문 사건과 아관파천에 대해서 포스팅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는 본격적으로 흑룡회의 출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고자 합니다.

 

 


흑룡회는 후쿠오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결사,

 

 현양사(玄洋社)의 우치다 료헤이가 결성했습니다.

 

 


현양사(玄洋社)는 일본 야쿠자의 전신으로


도우야마 미츠루(頭山滿)가 1881년 결성한 단체이며,

 

1889년, 국권당(國權黨)이라는 우익단체를 만들기도 했지요.

 

국권의 확장을 표방하여 국권론이 민권론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

 

제국주의의 확산에도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흑룡회(黑龍會)


삼국간섭과 의화단사건에 분개하여 현양사의 우치다 료헤이가 1901년 결성하였습니다.


우치다 료헤이는 그 주간(主幹)이 되었고, 도야마 미쓰루는 고문을 맡았지요.

 

주된 활동으로는 대아시아주의 지원, 손문(孫文) 등 혁명론자에게 자금지원 등이 있었습니다.

 

 

즉, 테크트리(?)를 보자면


현양사 ⇒ 국권당 ⇒ 흑룡회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겠지요.

 

흑룡회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하자면,

 

 

 - 근대 일본 최대의 국가주의단체로 현양사의 흐름을 잇는 낭인단체


 - 대아시아주의운동의 주류를 형성


 - 대러강경노선 선전과 만주의군 편성


 - 일진회의 결성과 활동에 의한 한국병합의 촉진


 - 시베리아 출병의 이면공작


 - 대러주전론을 내걸고 조선‧만주‧시베리아 지역의 조사‧정탐활동을 주된 업무로 함


 - 일진회와 손잡고 한일합방 운동 전개


 

라고 할 수있겠네요. 시험에 나올 수 있으니 아무튼 달달 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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