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침략과 전력산업, 일본 질소회사의 노구치 시타가우野口 遵
1930년대 초, 조선에 들어와 일본 총독부의 전력 통제 정책 하에서
전력산업을 일으킨 노구치 시타가우野口 遵
원래 노구치는 큐슈(九州) 지방에 있는 소기 전기(曾木電氣)에서 생산한 전력을 활용해
1908년 석회질 비료를 생산하는 일본 질소 비료 주식회사를 설립한 인물이었다.
일본 총독부는 당시 북조선의 전력은
장진강의 수력 발전을 이용하려 하였고,
남조선 쪽은 강릉 수력을 개발하여 전력을 이끌어 오고자 하였다.
하지만, 총독부의 재정문제로 인하여 '송전 간선(송전의 중심이 되는 선)'은 국영으로
'송전 지선'은 민영화 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그 결과 발전, 송전 산업은 민간에 맡겨지게 되었는데,
북조선의 장진강 발/송전 산업은 미쓰비시가
남조선의 강릉 발/송전 산업은 경성전기가 중심이 되어 송전망을 구축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새로운 산업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하여
장진강 전력의 개발은 지연되게 되고, 결국 총독부는 미쓰비시의 장진강 개발권을 회수하여
노구치 시타가우의 '일본 질소 비료 회사'에 개발권을 넘기게 된다,
(신 재벌들은 대륙 진출 사업에 적극적이었기에)
물론 노구치는 장진강 발전의 2/1은 공공용의 전력으로 돌릴 수 있도록 조건을 걸었다.
이후, 노구치는 장진강 수력 발전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 다음, 그가 당면한 과제는 평양과 서울로 전력을 보내는 고압선 설치였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조선 송전 회사이다.
발전 + 송전 회사가 공동으로 상호 견제 하에 운영 되는 것이므로
두 기업이 그로인해 더욱 발전하게 하는 것이 총독부의 목표였다.
하지만, 이에 남조선의 개발권을 가지게 된 경성전기는 반발하고,
남쪽의 전기 발전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결국, 총독부는 북쪽은 노구치에게 수력발전을 그대로 맡기고
남쪽은 영월의 화력발전으로 관심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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