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회黑龍會와 일진회一進會 그리고 세계정세
일진회一進會는 1904년 8월
송병준과 독립협회 출신 윤시병,동학교 이용구 등이 조직한 대한제국 시기의 대표적인 친일 단체입니다.
송병준이 1904년 유신회를 조직했다가 일진회로 개칭을 한 것이 일진회의 시작점이 되었지요
게다가 후일 동학교의 잔존 세력인 진보회를 매수하여 통합시킨 일진회는,
러일전쟁 중 일본군을 지원하여 이토 히로부미에게 자금지원도 받게 되지요.
그렇다면 오늘은 흑룡회와 일진회 결성 당시의 세계 정세를 한 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895년 ~ 1904년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열강의 점령에 맥을 못추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중국이 아주 극딜을 당하고 있었지요. 간단히 살펴보면
- 독일 : 교주만(膠州灣) 점령
- 러시아 : 여순과 대련을 조차
- 영국 : 위해위(威海衛)와 구룡(九龍)을 조차
- 프랑스 : 광주만(廣州灣) 조차
- 미국 : 대청 문호개방을 선언
이 있겠네요.
게다가 손문의 '광주의거'가 실패해 일본에 망명하는 사건과
무술정변(1898), 의화단사건(1899)이 열강이 파견한 군대에 진압당하여 실패로 끝난 사건도 들 수 있겠지요.
당시의 일본은 군비 증강정챙을 강행하고, 자본주의 발전, 제국주의 국가 기틀을 확립하며
전쟁준비를 착실히 시행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의견의 대립은 존재했지요.
바로 조선, 만주를 둘러싼 대륙정책에 대한 의견 말이지요
일본과 러시아가 조선, 만주를 분할한다는
이노우에의 만한교환론 or 러일협상론 or 러일동맹론과
러시아와 개싸움을 벌이자는 가츠라 수상의
대러개전론 or 일영동맹론이 그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1901년, 강경파인 가츠라가 정권을 잡으면서
영일동맹 / 대러개전론이 대외노선이 되었지만요.
이에 러시아는 중국 진출을 위해 1895년 '러청은행'을 설립하고,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러청비밀조약을 맺고 동양철도 부속권을 얻기에 이르지요.
1898년 봄, 산동성에서는 의화단의 비밀결사가 '부청멸양'의 배외운동이 일어났으며,
1900년 서태후가 오・영・불・독・이・일・러・미 8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지만,
북경을 점령당하고 거액의 배상금과 열강들에게 내정간섭권을 주게 된 계기가 되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열강의 중국 분할 경쟁이 일본에서 대두되자.
1898년 진보당의 정치가 중심으로 '대외동지회' 즉 동아회가 결성되며
'지나낭인'들이 고노에 아츠마로(近衛篤麿)를 내세워 중국 문제 전문 단체를 발기했습니다.
지나낭인은 1870년부터 복건성과 상해에서 이미 정보수집방면에서 활동중이었다고 합니다.
동아회 이전에도 최초로 중국문제를 다룬 단체는 '흥아회'가
「인종이 같고 문교(文敎)가 서로 다르지 않은 아시아 각국이 소원하기에 발기하였으며,
아시아 전토에 대세를 진흥한다」 라는 문장 하에 활동하였으나.
재일 중국인들의 반응은 '조그마한 일본이 흥아 운운하는 게 건방지다'라 할 정도로 쌀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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