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오사치濱口 雄幸와 금 수출 금지 법안
안녕하세요, 또 시험 기간의 정리 자료를 들고 온 카논입니다.
이번엔 1929년 7월 부터 성립한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의 금 해금(금 수출 금지를 풂)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하마구치 오사치는 일본 제국 쇼와시기의 일본 재무 관료, 정치가입니다.
별명 '사자 재상'이라고 불리웠으며 금 해금이나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참가하여 강력한 긴축경제를 추구하기도 하였지요.
그렇다면 금 해금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금해금(金解禁)은 금 수출 금지 해제를 뜻하는 경제학적인 일반용어인데,
역사적 고유명사로 사용될 경우는 일본 제국 시기 하마구치 오사치 내각에서
1930년 초에 단행한 금수출 해제결의 경제정책을 가리킵니다.
우선 메이지 말기와 쇼와 초기의 재정 상황을 한 번 알아볼게요,
러일전쟁의 자금 조달을 위해서 일본 은행 부총재는 국채 발행을 하여 외국에 팔게 되었고,
전쟁 후에도 재무부 장관이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서 국채 발행에 의한 공공사업을 실행하였지요
그러나 국채발행으로 빚이 쌓여가는 등, 제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1929년, 누계 적자는 10억엔 가까이가 되었습니다.
이에 하마구치 내각은 출범 이후, 지출을 줄이는 긴축재정으로 재정을 건전화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군대를 축소하여 지출을 줄이자는 의견을 낸 하마구치,
하지만, 군축을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협조 외교가 전제가 되어야겠지요?
그래서 하마구치는, 군대를 축소시키기 위해서 군부와
협조 외교를 실시하기 위해서 추밀원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리고 하마구치는 이 문제를 정당정치를 통해서 두 기관을 통치하려 하였지요
하마구치 내각 이전에도 정당정치의 시도는 있었습니다.
다만 와카즈키 내각은 추밀원을 넘지 못했고
다나카 내각은 군부를 넘지 못하였지요
다음 시간에는 하마구치 내각이 재정 재건을 위해 어떤 방법을 쓸지,
군부와 추밀원에 어떻게 대항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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