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에서 흑룡회黑龍會의 목적과 활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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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시간에 이어서 한일 관계에서 흑룡회의 목적과 활동에 대해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흑룡회는 일러개전을 주장하면서도 러시아망국의 구제를 위해 전후의 조치로써 일러협회 설립 주장하기도 했지요.
결국 1902년,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場)를 회장으로 일러간의 친선단체 명목으로 설립되었지만,
영일동맹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대거 집합하며 흑룡회의 젊은 층이
대륙문제 전문가로 발돋움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흑룡회의 해외활동
1902년부터 조선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기 시작한 흑룡회는 진해, 부산의 땅을 매입하고
일본해군시설과 포대를 설치 했으며, 대구에는 '비룡상회'를 설치해 낭인들의 거점을 만들었지요.
이어서 1903년에는 부산에 흑룡회 해외본부를 설치하고, 우치다 활판소라는 인쇄시설도 갖추었습니다.
1903년, 흑룡회의 우치다는 고마다 겐타로 육군중장에게 흑룡회가 중심이 되어
러시아 운송수단인 철도노선과 선박을 파괴하겠다고 진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요.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자 흑룡회는 시베리아 방면의 낭인 귀환에 주력하는 동시에
'만한신도', '정로안내', '여름의 만주'등 전쟁용 출판물 간행에 전력을 기울이지요.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부산서 '조선일보'를 발행해 이후
대한정책에 대해 논의함과 동시에
'화국사안(和國私案)'을 발행하여 전쟁중지를 위한 강화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흑룡회가 제시한 강화조건은
한국을 영원한 외 번으로 삼겠다.
시베리아 출진을 위해 동삼성과 요동일대의 땅을 우리가 접수한다.
러시아 보셋트만 지방을 할양하게 하여 북쪽 국경의 방비지로 삼는다.
사할린 및 캄차카 반도 또한 우리가 접수한다.
즉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동점(東漸) 불허를 최저조건으로 삼아
열강의 간섭이 없을 때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치다는 이토 및 가츠라 타로(桂太郞) 수상과 만나 강화를 적극 권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흑룡회는, 러일전쟁의 개전과 종전 처리 과정에 깊게 관여하였지요.
메이지 행정부의 대륙침략정책을 선동 동조 협력 지원
화친과 개전이라는 양면작전의 선봉대적 역할
여론조성과 낭인의 결집으로 침략전쟁을 직간접으로 지원
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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