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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오르골

『...?』 ▶Play '비의 전선(戰線), 지금(今) 여기서(所) 전하지 않으면..' ~그들의 궤적(軌跡) [side A], 1999

by KaNonx카논 201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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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적(軌跡) [side B]



.. 비는 싫어하지 않는다.


여름의 시원한 성수(聖水)는, 만물의 더러움을 정화시켜 주니까.


그러니까, 비 오는 날은 싫지 않다.


단순한 개인의 착각이라 할 지라도


내 안의 더러움 마저 씻겨주는 같았으니까..




궤적(軌跡) [side A]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릴까..


내 앞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풍경은, 한없이 초라하고 어찌할 수 없이 외로웠다.


- 방울 방울 하늘에 흩어지던 빗방울은 이내 거센 폭우가 되어--


우산조차 쓰지 않았던 나에게로 갑작스레 불어닥치는 비바람..   아프다.


하지만, 그 쓰라림은 너의 아픔에 비견 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여름의 비는 오래지않아 미미한 열기조차 빼앗는 날카로운 한기로 변해버렸다.


아니, 이 냉기조차 그가 느꼈던 냉정과는 비교되지 않겠지..


- '2년.. 인가,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네..'


언젠가 재회하리라 믿으며 마음 속 깊은곳에서 단념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마구 때려주고 욕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이런 재회는 if.. 라고도 생각치 못한채로


-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그렇게나 찾아 헤매이던 이름 세 글자가 손가락이 닿을 만한 거리에


처음부터 온도 따위 지니고 있지 않았을 회색의 석판은 차가웠다.


아아.. 허탈한건가.. 슬픈건가.. 아니면.. 괴로운걸까..


- 물빛의 비바람은 거세게 흔들리는 나를 사정없이 치고 지나가고,
얼굴에는 열기를 잃어버린 이지러진 자국이 하나 둘..--



오열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덮쳐들었고, 세기를 더해가는 폭우 속에 흐르는 2년 전의 주마등.


넘쳐 흐르는 감정의 파도에 밀려온 나를 향한 그의 마지막 페이지
 

나만이 아프고 나만이 힘들거라 생각했던 이기적인 2년의 시간.


그 후, 발견한 2년 전 여름, 그가 남긴 마지막 조각들에 담긴 사과, 자책, 사죄, 깊은 고백.


슬픔이란 아무런 형용도 취하지 않은채 흘러들어온다.


- '..알아채지 못해서.. 미안해'


몇 번을 중얼거리고, 몇 십방울의 눈물이 볼에 어그러졌을지도 기억해내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제 소멸한 연인에게 용서를 구하자..


내가 느낀 괴로움 보다 그는 괴로웠고, 내가 외로운 것 보다 그는 더욱 외로웠다.


뒤돌아 갈 수 없는 나날, 비에 눅눅히 젖어 여기에서 잠들다.


- 어느새 빗발은 약해져간다. 초저녁의 하늘은 오렌지 빛을 덧씌우고,


손에 든 하얀 종이는 노을에 붉게 타오른다.


장미색의 노을을 받아 타오르는 불꽃을 살며시 안고,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짧은 목소리는,


수분을 머금은 수해의 웅성거림에 묻히지 않고 창공으로..


-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한 편의 나즈막한 미소와 함께 이제는 떠날 시간..




 
 -Bleeze-





 
Image by.pixiv -19823742_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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