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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일상/짧은 이야기

끝 가을

by KaNonx카논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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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침, 마침내 태풍이 지나가고 흐릿한 햇빛이 겨우 고개를 내밀었지만

 

이제 더 이상 여름의 풋풋한 향은 온데간 데 없었다.

 

 

끊임없이 원룸촌 사이를 눅진히 기어다니던 매미소리가
그리워질 만큼 갑작스레 28번째의 가을이 찾아왔다.

 

 

침대 맡에서 밤새도록 흘린 유튜브의 재즈 채널을 닫았다 .

착신 0건, 카카오톡 0건. 졸음이 아직 가시지 않은 눈을 비비면서 티비를 켰다.

 

태풍은 지나갔나보다. 많은 호우의 상처를 남겼지만 결국 올 해 마지막이 될 비바라기는 지나갔나보다.

전기 포트의 끓는 물에 유자차를 풀어헤쳤다.

 


아직도 남아있었던 가슴의 구멍이 한 결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동안은 쌀쌀하고 흐린 날씨가 계속 될 것 같았다.
그 한동안이 얼마나 긴 시간이 될 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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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집중하기 위한 수단으로 퇴근을 하면 끊임없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 블로그를 뒤적이며

그나마 봐 줄 만한 글들을 골라내고, 새로 썼다.

 

남들이 봤을때는 글쎼, 비웃지만 않아주면 좋을 것 같은 부끄러운 글 들 투성이다.

학생 때 내내 문학상에 투고했 지만 참가상 밖에 받지 못한 멍충이의 글이니까.
(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은 게임에 과금했다.)

 

그런 글이지만, 정말 가끔은, 이런 내 글에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면서 고마워한 사람들이 있었다.


8년이라는 시간이 최소한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내가 힘들 때 마다 써 오던 글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었다는게 희한하기는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지금은, 잊으려고 글을 쓰고 마음 을 정리하는 수단으로써 작은 책을 엮으려고 한다.

이 와 중에도 무슨 강풍에 흔들리는 갈대마냥 마음은 흔들리고 있지만

 

책이 인쇄되고 난 후에는 무엇이 되었든 내 나름 대로 결론이 지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이별을 겪을 때마다 점점 겁쟁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성숙은 커녕, 케이지 구석에 꼬불쳐 들어가서 영영 나올 수 없을만큼 바들바들 떠는 햄스터 마냥

가까이 오는 사 람이 두려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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