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스산이 자취방을 스쳤다,
귀뚤이가 우는 소리를 가만히 듣자니
옛 필름 영화같이 뜨문뜨문 옛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여럿이도 내 옷깃을 스쳐 지나갔었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는 비바라기처럼 살짜기 흔적만을 남기고,
또 어떤 이는 첫 눈처럼 손에 닿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졌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소나기 온 듯이 옷을 푹 적셔버렸기에,
그 때마다 뜀박질로 떨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혼자만 물에 빠진 생쥐가 될 때에는 어김없이 열을 동반한 커다란 후유증이 오기 마련이었으니까.
나는 이것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그건 내가 잘 하는 헛소리의 일부에 불과했다.
여느 가요에서 흔히 나오는 싸구려 사랑놀음,
그것조차 되지 못한 반편이 마음,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린 감정 찌꺼기, 그런 것들을 떨쳐내기 위한 자기 방호 행위였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머릿속에 그 사람의 목소리며 향기,
심지어는 손의 감촉까지 되살아나버려 괴로운 일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버리는게
내 일과 중 하나가 되어버릴테니까.
지금 당장에 맞고 있는 비 바람도 그렇다.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눈동자를 바라보며 자상히 말을 걸어줬다.
그만큼이나 심장을 타일렀는데,
그의 반 정도 타버린 팔에서 나는 햇빛의 냄새에 넉다운 당해버렸나보다.
경험상, 뒷맛이 좋게 끝나지 않을 거란걸 뻔히 아는데도
습관적으로 그와의 카톡을 열어보게되는 모습에 피식 자괴감이 입에서 새어 나온다.
기록을 삭제하고, 친구에서 파내길 두 세번, 나름 대로의 각오로 맞서도
여보라고 불러주는 그 단 한마디에 함락되는 싸구려 자존감.
아마도, 아니 반드시 이 진흙같이 질척한 가슴이 개이는 날은
그가 날 철저히 버리고 갔을 떄, 혹은
내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일 테다.
물론 그 과정을 감내하기까지 또 달리고 달려서,
해가 지고 어렴풋이 새벽이 밝아오는 곳 까지 뛰어야지만,
북받쳐오는 짝사랑의 잔재를 남김없이 토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
'잡다한 일상 > 짧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녕히 계세요, 아마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그 말 (0) | 2019.09.15 |
---|---|
나는 당신의 꼬부기가 되고싶다. 옆에 있는게 당연한 듯 (0) | 2019.09.12 |
씨유CU, 띵작 먹킷리스트 오리지날 모찌롤 딸기맛 후기! (0) | 2019.03.02 |
대구 복현동 코스트코, 20년만에 쇼핑해 보았습니다. (2) | 2018.10.22 |
코스트코 팟타이 세트로! 치킨 팟타이 만들어 보았다! (0) | 2018.10.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