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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소설을 끄적여 보았다

無題

by KaNonx카논 201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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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걷는다.

 

세계의 온갖 부조리에도, 인간이 엮어내는 끝없는 절망에도 묵묵히 이겨내고 걸었다.

 

 

그의 종착점은 오직 한 남자의 넓은 등

 

철의 냄새가 배어버린 무수의 상처와 무참히 발겨져 죽어버린 과거로 얼룩진 죄의 검은 총신을 맨 남자의 등이었다.

 

 

분명, 소년은 절대로 그가 짊어진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도 소년은 무지했다

 

자신이 믿고 올려다 보았던 닿지 않는 불빛이,

 

모든 희망을 구현화한 듯한 진정한 이상향이,

 

 

실은, 마지막 불빛을 태우던 작은 반딧불의 잔영일 줄은 생각치도 못하고..

 

 

-

 

 

계기는 전쟁이었다.

 

벌써 몇번째를 맞이하는지 이미 세는 것 조차 바보같이 되어버린 어리석은 싸움의 반복

 

전쟁이란 재앙에 적당한 이유를 대는 사람도 더 이상 없다.

 

복수는 복수를

 

피보라는 피보라를

 

화약의 탄연은 탄연을 낳을뿐인 극히 원초적이며 야만적인 행위였다.

 

 

황량하게 울려퍼지는 격철의 노래와 날카로운 착탄음.

 

그것을 시작점으로 여기저기 달라붙는 혈흔의 적색에 휩싸인 전장의 중심에

 

소년은 우두커니 섰다.

 

 

모험심같은 우둔함으로 선 전장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멍청한 어른들의 눈을 띄우고, 총탄을 멈출 각오로 용기있게 뛰어든것도 아니었다.

 

그저

 

소년은 발이 묶여있을 뿐이었다.

 

언제나 인간의 한 발자국 뒤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공포,

 

죽음의 앞에서

 

 

부모를 동시에 앗아간 지뢰의 날카로운 파괴음과

 

친구들을 하룻밤새 삼켜버린 미사일의 붉은 폭격이 낳은 피할 수 없는 절망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의 앞에 도래한 죽음의 형태는 -

 

진홍의 혈액에 가라앉아가는 소년의 단 하나뿐인 형을 나락으로 끌어들인다.

 

멍하니 서있는 소년의 앞에 붉은 혀를 낼름거리며.

 

 

소년의 주위에는 살의와 포격소리로 이미 죽음으로 포화를 이루며 형에 이어 소년의 존재마저 부정하려한다.

 

 

예를들어 벽에 튕겨져 나온 차가운 도탄이

 

우연찮게 오폭된 수류탄의 파쇄의 폭풍이

 

 

어쩌면, 소년을 직접 노리는 살갗을 파고드는 살의가

 

 

  기름에 번들거리는 무온無溫의 병기가 소년의 작은 머리를 겨냥하고

 

이윽고

 

끈적한 적혈이 바닥을 더럽히고

 

뇌수가 죽은 육체를 타고 흘렀다.

 

퍼셕- 하는 물기가 많은 고체가 터지는 듯한 파열음이 한번 한번 한번

 

 

십 몇번이었을까.

 

일방적이 몰살은 코를 아프게하는 짙은 탄연이 개인 후에야 그 이빨을 거두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여진히 움직일 줄 모르는 소년의 귓전에 무거운 발소리가 울렸다.

 

 

이어 소년의 눈앞에 서 걸음을 멈춘 존재는 흑黑,

 

피와 탄약으로 젖어 흉흉한 분위기를 풍기는 검은 옷의 남자였다.

 

 

소년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 죽음의 사자死神다. 라고

 

 

발을 멈춘 검은 남자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언가를 소년의 형이었던 것의 위에 내려놓았다.

 

분명, 소년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물건이다.

 

소년의 마지막 생일 선물이 되었던 플라스틱 로봇의 조잡한 왼팔이었다.

 

소년이 간직하던 최후의 다정한 조각이자

 

형을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 절망의 조각은

 

이 이상 원래의 색조차 알아 볼 수 없게 피로, 먼지로 물들어버렸다.

 

 

소년은 털썩 주저 앉았다. 

 

붉은 조각의 선명한 선홍색에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소년의 눈에는 형의 피가 섞인 적색의 눈물이 구른다.

 

 

소년에게 더 이상 공포란 감정은 없었다.

 

소년의 뇌속을 휘젓는 미쳐버릴듯한 감정의 소용돌이의 이름은 비애悲哀

 

걷잡을 수 없는 오열이 소년의 눈을 타고 넘쳐을러 고인다.

 

검은 남자는 묵묵히 울부짖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애도의 말도, 유감도 표명치 않은채 거기에 존재할 뿐이었다.

 

 

훗날 소년은 문득 깨닫게된다.

 

그 침묵은 남자의 무관심이 아니라 그 나름 최대한의 배려였다고.

 

 

그 뒤 소년은 일언도 내뱉지 않은 초면의 남자를 따라 걸음을 떼었고,

 

여진히 그의 한 발자국 뒤에서 그를 따르고있다.

 

 

흑색의 총신을 맨 넓은 등은 가깝지만 소년에게는 아직 머나먼 것이다.

 

검고 더럽지만 반짝이고있다.

 

누구보다 죽음과 가깝지만 살아간다.

 

 

소년은 모순된 사나이의 옆에서 걸을 뿐이다.

 

만약 그것이 어릴적 꾸었던 친절한 히어로의 꿈과 다를지라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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